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많은 석고들의 대부분은 서양 미술이나 예술 철학의 산물일 뿐이다.
미술 전공을 꿈꾸는 많은 예비 미술 인들이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서양의 미술과 예술 철학만 편식하게
되는 꼴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석고 데생을 없애고 다른 방법으로 미술 입시를 행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미술
상황에서는 우리의 미술 현실에 적합한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다른 방법이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는 한국화의
열악한 환경, 전문가나 비평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서양화 일변도로 미술계가 흐르고 있다는 점, 전통 미술에
대한 경시 풍조의 만연과 교육 관계자들의 무지함 등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미술 현장에서의 주먹구구식의 변화는 더욱 우리 미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 미술 인들의 각성과 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각이 도입된 지 벌써 반세기 이상이 흐르고 있으며 수많은 대학에 조각 전공 관련 학과가 있다. 이제 우리 선조의
얼이 담겨 있는 여러 조상들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이 계통의 전공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철학, 예술 철학이 스며있는 가장 한국적인
조상들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순신상 율곡상, 신사임당상, 세종대왕상, 단군상, 견우와 직녀상 등등이나 또는 한국의 불상이나
보살, 나한상 등도 좋은 소묘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서양의 조각들이 즐비한 현행 미술 입시제도에서 우리의 석고 조각들이 서양의
석고들처럼 많이 만들어지고 연구되고 그려진다면 한국화와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한 기본 토대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진정한 한국화의
발전을 위하여 입시제도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둘째로는 초·중등학교 미술 교과서의 구성 문제이다. 근대 이후 우리의 낙후된 미술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서양 미술
위주의 구성은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설령 서양 미술에 부분적으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용에는 한국 미술이라는 커다란 틀을 기저에 깔고 있어야 할 것이다. |
|
최근까지의 미술 교과 내용을 살펴볼 때 한국 미술에 대한 큰 틀을 염두에 두고 있진
않은 듯 하다. 초·중등학교의 미술 교육은 전공 비 전공을 떠나 매우 중요하다.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일부 작가들이나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 전문인들이 아무리 한국 미술에 대해 염려하고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더라도, 초·중등학교 미술 교과서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는 한국 미술과 한국화의 장래는 불투명하다. 미술 책을 만드는 기본 틀이나 시각은 한국 미술 교과서라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한국 미술 교과서에는 한국인의 예술 철학이나 미술 정신이 먼저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미술 교과서는 미술의
기법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술 기법 책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면 한국 미술은 앞으로도 후진국의 미술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예술 철학이나 미술 이론에 대한 미술과 관련된 전문인들의 보다 심도 있는 관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셋째로는 미술 대학 교과 과정의 중요성에 있다. 현재 많은 대학에 한국화나 동양화과가 있다. 이들 전공은 졸업 후의 사회 활동 등을
감안하여 본다면 적지 않은 인원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미술대학 학생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화 내지는 동양화를 전공한 학생들의
진로가 졸업 후 매우 어렵게 전개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의 원인은 대학의 교과 과정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많은
미술대학은 실기 위주의 교과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화가를 양성하고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미술 인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에서 필요한 이론과 실기로 무장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미술학과는 절름발이식 교육이 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교수 대부분이 실기 위주의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의 교육이 기능 위주의 미술
교육으로만 이루어지는 잘못된 모습이 학생들의 다양한 배울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과의 이론 수업은
더 세분화되고 더 전문적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한국미술사나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 현대회화론, 조형론과 같은
전시적 교과목만 가지고는 경쟁력 있는 전문인을 결코 양성할 수 없 |
|
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미술 내지 한국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진부한 작품 제작에 머무르지 않는, 좀더 변화되고 다양한 실험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남도에서 꾸준하게 제작되는 문인화의 경우는 큰 틀에서 볼 때는 거의 똑같은 수준의 작품 제작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면이
나타나게 된 근본 원인은 도제식 교육이나 이론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된다. 보다 실험적이고 변화된 한국화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진부함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이론 교육이 따라야 할 것이다. 어느 한 계파나 유명인 누구에게
사사 받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고로 자신만의 이야기와 생각을 독창성 있고 멋들어지게 펼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예를 들자면 조성계의 〈동심〉이나 조용백의 〈항구〉는 한국화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한 쪽은 지극히 동화적인 모습의
독창성을 지닌 반면에 또 한 쪽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독특한 형상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승하의 〈산천초목〉은 채색
작업이면서도 다른 한국화에 비해 실험성이 농후하다고 생각된다. 한풍렬의 〈계림정경〉 역시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 요소로 적절하게
변화시키며 우리에게 새로운 형상과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권희연의 〈생〉과 같은 작품도 산수자연을 자신만의 시각에서 보고 있다.
이처럼 작가들의 독창적이고 비 서양적인 작품세계는 보다 발전적인 한국화를 창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장준석박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였으며 동국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 좥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을 위한 노래좦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역서 좥대륙을 품어 화폭에 담다좦가 문화관광부 우수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좥21세기, 새로운 한국미술의 단상좦이 있으며 현재 고려대, 성신여대, 충북대, 서울사이버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분과위원장과 동악미술사학회 운영위원, 그리고 본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