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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논단

박선규 - 그림의 현대적 담론

2007년 08월호 > 특별기획 > 미술논단 > 박선규 - 그림의 현대적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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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논단/ 그림의 현대적 담론

그림의 현대적 담론

Park, Sun Kyu

글 : 박선규 / 철학박사

• 원광대학교 대학원 ( 미술학 석사 ), • 대만 문화대학교 철학연구소 ( 문학석사 , 미학전공 ),
• 대만 동해대학교 철학연구소 ( 문학박사 , 미학전공 )
• 전 ) 중등학교 교직 경력 13 년 , 대학 및 대학원 경력 15 년 , 대만 동해대학교 겸임교수 2 년
• 현 ) 사단법인 한국미술창작협회 이사장 , 의재정통유화연구원 지도교수
• 논문 : 易學與樂記中美學原理探究 ( 중국 문화월간 ), 藝術論 ( 중국 문화월간 ),
藝術與創造定律 ( 중국 대만성 교육청 문화논문집 ), 예술과감정 ( 한국 정신문화원 계간 논문집 ) 외
美學 . 예술철학 . 조형론 . 기교론 . 평론 . 감상에 관한 논문 다수
• 저서 : “繪畵思想與造形理論” ( 中文 ) “道思想과 繪畵世界” “美學이란 (1) ” “사색의 모델”
“이 시대를 바르게 살아가는 길” “현대미술도 예술인가”, “예술과 창작” “예술이냐 외설이냐”
“산수화와 그정신” “산수화의 조경이론” “문부와 그 미학” “공자는 안 죽어”,
“석도는 그림을 이렇게 그리라 하였다” “멍청한 심사와 응모작품” “제멋대로 ( 隨意 ) ”
“미학이란 (2) “ ”람상 1 “ ”람상 2 “ ”람상 3 “ 등 19 권
• 작품활동 : 유화 . 수채화 개인전 11 회 단체전 다수 출품 , 유화 50 인 초대전 출품 ,
아시아수채화연맹전 출품 , 맥시코 수채화비엔날레 출품 , 한국수채화협회전 출품 ,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
2001 년 제 26 회 한국수채화협회전 출품 , Fine Art Communication 협회 일본 동경전 출품
• 수상경력 : 교육공로상 3 회 수상 , 공모전 유화부문 3 회 수상 , 서예부문 2 회 수상

차 례

202. 회사후소(繪事後素)
203.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遊於藝)
204. 해의반박(解衣般薄)
205. 한비자(韓非子)의 문화예술배척

206. 세부묘사보다 전체묘사
207. 호화불성, 반류구자(虎畵不成, 反類狗者)
208. 상득익창(相得益彰)
209. 자서자화(自書自畵)
210. 기교위묘(技巧爲妙)

211. 심목상수(心目相授)
212. 외사조화(外師造化),
중득심원(中得心源)
213. 유거기교(遺去基巧),
의명현화(意冥玄化)
214. 화가는 성인

Ⅱ.
“그림의 현대적 담론 ” < 201> 까지는 서구적 미 철학 중심의 글을 썼다. 동·서양의 미 철학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의 차이나 피력하는 방법의 차이는 있다. 따라서 그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또한 그 깊이가 다르다.
사실, 동양적 시각과 서양적 시각에서 논한 미 철학을 두루 섭렵해야 비로소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나 이로 인한 사상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두 가지 맥을 이해하고 그의 조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사상의 흐름이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임을 알 수 있게 되고, 아울러 미 철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미 철학의 진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톨스토이(Tolstoi. 1828-1910)가 “예술적 작품이 제작되고 유지되고 있는 사회를 향해서 예술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이 모두가 참된 예술인가 아닌가, 또한 예술은 모두 선인가 아닌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희생에 상당할 만큼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심구(尋究)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심구”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우리 삶에서 필요한 존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척도적 역할도 두 가지의 미 철학을 이해할 때 기대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무엇을 척도로 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미의식을 이해하며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여 “어떤 것이 진솔한 아름다움인가” 또는 “삶에서 진실로 필요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예술적 기교가 왜 필요하며, 이의 존재가 곧 예술품임을 인정케 하는 구성상의 문제해결도 또한 이 미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죤 듀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외부적인 요소와 유기적인 원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야기되는 ‘그 자체’하나의 ‘총체적 결과’이다. 외부적 요인이라는 것은 캔버스 위의 그림물감으로부터 다양하게 반영되고 굴절된 빛의 변화이며, ‘그림’은 유기체를 통해 마음에 와 닿는 그들 상호작용의 통합적 결과인 것이다”고 말한 심리적인 시각의 미 철학으로서는 해결되지 않는 점이 있다. 삶의 가치를 관심의 체계로부터 논하려는 형이하학적 관점은 언제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처럼 미 철학도 그러하다. 관심의 추구는 삶을 재미있게 하고, 관심에 대한 만족을 줌으로서 삶의 의미를 더욱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모순을 가져온다.
동양의 미 철학은 안전이나 건강, 자유, 우정, 지식 등 현실적인 제반 가치문제로부터 그것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 있기에 도(道)가 있으며, 도(道)가 있기에 사물이 있다는 시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로서 미 철학을 이해하려고 한다. 당신이 배려하고 있는 관심이 바로 당신이고, 그것이 당신을 개별적인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현실적인 생각은 아예 접어둔다. 관심에의 집착이 아니라 그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삶의 문제로 삼고, 그 해결 방법도 여기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미(美) 자체는 개개인의 감정에 내재한 심미척도로서의 개념이 아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미(美)는 우주만물의 생성원리와 같다는 미의식을 가지고 있다.
역대(歷代) 미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말들만 골라 그것을 풀이하는 방법으로서 도(道)적 개념의 동양 미 철학을 논하려고 한다.

박선규 作 <옥녀(玉女)> 90.9 x 72.7cm

202. 회사후소 (繪事後素)
공자보다도 44세나 아래인 자하(子夏)라는 공자의 제자와의 대화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회사”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후소”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본래의 소박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의미이다.

옥에는 여섯가지 미덕이 있는데, 서한(西漢)시대의 경학가(經學家) 유향(劉向)의 금서대전(琴書大典)에
1. 바라보면 온기와 윤기가 있으니 군자의 덕과 같고
2. 공손하고 단단함이 군자의 지혜와 같으며
3. 두두리면 소리가 서서히 나지만 멀리까지 울리니 군자의 의리 같고
4. 부러지거나 휘어지지 않으니 군자의 용기 같으며
5. 보기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변함없는 단단함이 있으니 군자의 인자함 같고
6. 맑고 투명함이 있으니 군자의 사심없는 정 같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사대부 가문의 자녀들에게 옥을 몸에 지니게 하고 항상 옥과 같은 인격을 지니게 하였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패물로 항상 몸에 지니게 함으로서 그러한 수양을 쌓는일에 게을리 하지 않도록 교육 시켰다.

"옥 같은 여자", 옥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부닥치면 잘 깨진다. 모에 지닌 옥이 잘 깨지지 않도록 하려면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여자의 몸도 옥처럼 깨지지 않도록 조신해야 한다.
그래서 옥반지, 옥팔찌, 옷고름에 달고 다니는 옥패물이 있다.
그러한 자연적인 미덕을 지닌 인격체를 표현하려는 실험 작품이다.

소(素)는 『예기잡기하(禮記雜記下)』에 순수함, 흰 것 이라 하였고, 『논어』에는 무색, 기물에 어떠한 수식도 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관자(管子)』에는 5색의 본질, 『설문통해(說文通解)』에는 물질에 어떠한 것도 장식하지 않는 것, 『회남자(淮南子)』에는 소박이라 하였다. 그 외에“본성(本性), 넓다, 비어 있다는 의미도 있다.
소(素)가 “5색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5색이 만들어질 어떤 기운만 있을 뿐 실제로 5색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비어 있다”는 말도 비어있는 공간에 이러한 물건도 저러한 물건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얀 캔버스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으므로 비어있는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것도 그릴 수 있다는 것으로서 “비어 있는 캔버스”이다.

그런데 그러한 캔버스에 이미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그린 후에 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최상의 방법이며, 그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사물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사물의 본질을 왜곡시켜서 그리는 그것이 개성있는 창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는 그 대상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그 자체를 진솔하게 표현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림을 그린 후의 소(素)의 본 의미는 사물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물의 본질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3.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游於藝)
공자는 예술행위에 대하여 그 뜻은 도에, 그 근거는 덕에, 인에 의지하고, 그 감정은 질서 속에서 라고 하였다. 이 말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개개인의 형이상학적 사고의 수준에 따라서 예술활동의 목적을 도에 두고, 예술이 인류사회에 공헌해야하는 덕을 거론해야 하는데, 인에 의지하고, 정(情) 의 표현 또는 예술활동의 정서적 기준을 질서에 두어야 한다 와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공자가 말한 “예술활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즉, “지어도(志於道)의” “도(道)”의 의미는

『설문(說文)』에 소위 행하는 행동을 지칭하는 말로서 본래 행위를 하려는 그 목적에 도달하려는 길로서 행동, 『중용(中庸)』에는 도는 모든 것의 존재이치로서 한 순간도 떠날 수 없는 것, 모든 사물들의 존재가치 발휘를 위한 쓰임의 정당한 이치, 『한비자(韓非子)』에는 시비를 분별하는 척도로서 기강, 만물이 비롯되는 것, 만물이 그렇게 되는 까닭”, 『소문천원기대론(素問天元紀大論)』에는 천지의 도로서 만물이 화생하는 이치, 만물이 존재자체를 위한 오묘한 활동의 도리, 법술 ,『주역(周易)』에는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라한다, 『장자(莊子)』에는 도는 공공적인 것, 도는 이치, 『국어(國語)』에는 질서를 지키는 법술(法術), 『사기(史記)』에는 주의 사상(主義思想), 『예기(禮記)』에는 예악(禮樂) 또는 인의(仁義)의 덕행, 『신서(新書)』에는 덕의 근본, 『주례(周禮)』에는 재주가 많은 예술가라 하였다. 이 외에도 법제, 방법, 행정(行程), 소통, 순리(順理), 바름, 신묘한 행위, 불교에서는 “무애자재(無碍自在)”라 하였다.

“도에 뜻을 둔다”는 것은 “허지망형(虛志忘形)”으로서 “뜻을 비우고 몸을 잊어라 즉, 도의 이치에 맞지 않는 뜻을 세우지 말고, 자신을 의식하는 형상을 기획하는 것 등을 잊어버려라는 말처럼 예술가는 바로 이와 같은 도를 실천하는 것에 그 뜻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어덕(據於德)의 “덕(德)” 은『석언(釋言)』에 사리의 적당함을 얻는 것, 『주례(周禮)』에 정순(貞順), 현자(賢者)를 지칭 한다. 『예기(禮記)』에는 이치를 얻는 것, 본성(本性)의 실마리 또는 본성이 아직 발현되지 않는 가장 순수한 감정상태, 네 계절의 기운이 왕성한 것, 『안씨가훈(顔氏家訓)』에는 수양한 후에 얻는 본성(本性)과 같은 것, 『장자(莊子)』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기강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 덕은 천덕, 지덕, 인덕(天德,地德人德)이 있다. 천지와 소통되는 것, 『회남자(淮男子)』에는 자연과 같은 인간의 본성이 속세의 먼지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한 생명체가 비롯되게 하는 것, 오곡을 풍성하게 생산하여 그것으로 굶주림을 면케 하는 땅의 이치와 같은 것, 『한유(韓愈)』에는 본성적인 행동, 본성적인 기질, 『백호통(白虎通)』에는 땅은 그 두께를 덕으로 한다. 『논어(論語)』에는 행위나 절조를 덕이라 한다, 은혜를 베푸는 것, 『논형(論衡)』에는 실행 그 자체를 덕으로 한다.

『주역(周易)』에는 음양의 이치를 수양하여 신과 완전히 소통하는 것, 음양의 조화, 『한씨외전(韓氏外傳)』에는 진리, 이치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여 천지가 공존하도록 하는 오묘한 것, 『관자(管子)』에는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것, 『좌씨(左氏)』에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것, 『전국책(戰國策)』에는 은혜를 모든 생명체에 부여하는 것,『한비자(韓非子)』에는 선행을 경하하고 포상하는 것”, 『산해경(山海經)』에는 봉황의 벼슬은 덕을 상징한다. 5색의 문양 중에서도 빨강 색인 봉황의 머리 위에 있는 벼슬을 덕으로 하는 것은 벼슬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양(陽)의 기운과 같은 이치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통한다, 울창한 산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 같은 것, 위엄을 부리지 않았는데 위엄이 있는 것, 의리를 지키며 선함을 베푸는 것, 시시비비를 모르는 순수인간의 행위라는 의미도 있다. 노자(老子)는 “상덕은 부덕(上德不德)이다” 하였다. 이 말은 마치 태양이 지구를 비춰주기에 지상의 모든 생명체나 기타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데 태양은 태양의 그러한 공덕을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러한 덕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덕을 베풀지만 덕을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으며, 오직 인간의 본성(本性)에 의하여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스스로 행해지는 선행 같은 것이다. 예술작품은 마치 햇빛이 하늘, 땅, 동서남북을 비춰 모든 생명체에게 덕의 융화를 베푸는 것처럼(德融若日燭六虛)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게 덕의 그와 같은 정서적인 것이 스스로 베풀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어인(依於仁)의 “인(仁)”은 『설문(說文』에 모든 것과 친한 것,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예기(禮記』예 상하(윗 사람과 아랬 사람, 하늘과 땅, 군주와 신하,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서로 사랑하는 것, 『중용(中庸』 에 사람이다. 즉,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되어 서로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 『맹자(孟子』에 친절로 서로를 친절하계 대하는 것 , 삶은 누구나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인내로서 그 참을 수 없는 것 을 참아내는 것, 『묵자(墨子)』에 사람(지상의 모든 생명체)을 사랑하는 것, 『한비자(韓非子)』에 마음 가운데 항상 기쁨이 있는 듯 희열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장자(莊子)』에 널리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용납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

『논어(論語)』에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 『춘추(春秋) 에 마음의 본체 성(性), 이(理), 각(覺), 그 외에 가련하게 여기는 것, 인내하는 것, 하늘이 하는 일과 같은 것, 봄, 양기(陽氣), 사람과의 소통 이라 하였다. 『노자(老子』는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 하였다. 이 말은 하늘과 땅은 인자함을, 자애로움을, 사랑을 베풀지만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을 인(仁) 이라 한다는 뜻이다. 예술은 위에서 말한 인(仁)의 의미처럼 그러한 집을 짓고 그 안에서의 창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공기(考工記)』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5색을 서로 섞이게 하는 것이다 고 말한 그 “잡오색(雜五色)”을 할 때 인(仁)을 하나의 집으로 의지(依支)하는 가운데 그렇게 한 창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어예(游於藝) 의 “예(藝)”는 『맹자(孟子)』에 심는 것(植, 『순자(荀子)』에 심는 것(種), 『서순전(書舜典)』에 재능 (才能), 또는 문덕(文德) , 『예기(禮記)』에 재기(才技), 『사기(史記)』에 일예에 능통함을 최상으로(能通一藝以上), 최상의 경지는 곧 천자와 상통하는 경지로서 도(道) 와 상통함을 의미함, 사준적(射準的) 즉, 화살을 쏠 때 조준하여 과녁에 적중한 것, 『좌씨(左氏)』에 극(極) 즉, 최상의 경지에 도달로서 무극(無極)을 의미함, 하나의 준칙(準則), 법제(法制),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理), 『주례(周禮)』에 육경(六經) 즉, 경서의 여섯 가지로서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예기(禮記), 악기(樂記) 또는 주례(周禮)를 말한다. 이 육경은 인류문화의 가장 핵심이 되는 모든 것의 사례나 그 법칙적인 것을 기록한 법서(法書)와 같은 것이다. 자연을 법으로 한 인류문화창조의 사례집이다. 육예(六藝)로서 즉, 예(禮), 악(樂), 어(御), 서(書), 수(數)의 여섯 가지 기예의 창작법칙이다”. 이 외에 정(靜), 도술(道術), 통하다, 질서 등의 의미가 있다. 예술가 뿐만 아니라 인간은 모름지기 이러한 여섯 가지 기예의 창작적 정신 속에서 노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藝)는 예(禮)이며, 예(禮)는 곧 질서이다. 질서란 우주의 운행질서로서 날마다 하루가 오지만 그 하루들 가운데 변화하는 지상의 현상이 다르듯이, 그러면서도 지구가 영원히 존재하며 생명체의 진화를 가져오는 “우주적 질서”이다. 예술작품에 이와 같은 질서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곧 “유어예(游於藝)”이다.

204. 해의반박
『장자(莊子)』에 송원군(宋元君)이 장차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한 사람 선발하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수험생들은 정중히 감독관에게 인사를 하고나서 지필묵을 준비하는 사람이 시험장을 가득 메우고, 밖에 있는 사람도 그 절반이나 되었다. 뒤 늦게 도착한 한 사람이 당황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그러나 감독관에게 인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옷을 벗어 나체가 되었다. 송원군(宋元君)이 이를 보고 “옷을 벗었어, 좋아, 너야말로 진정한 화가구나” 하였다 한다.

해의(解衣)는 옷을 벗는다, 반박 은 나체라는 말이다. 반(般)은 『집운(集韻)』에 즐거움 『태현경(太玄經)』에는 문(文) 즉, 무늬 라는 뜻도 있다. 이 외에 행동, 통하다, 크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다, 불교에서는 지혜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박 은 벌거벗은 몸 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노자(老子)의 무위(無爲)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말로서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인문문화(人文文化)의 모든 것들은 사실상 자연 현상의 성문화로서 문양을 만들어가는 자체인데 이것들은 무위적인 것이 아니고 유위(有爲)로서 인간들의 사적(私的,邪的) 감정이 개입되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형식을 중요시 한 나머지 그 본질을 잊어버린다든가 혹은 본질과 형식이 맞지 않아서 괴상한 것이 된다든가 이러한 인문 문화의 현상은 모두 유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험장에 들어온 수험생들의 일련의 행동들로서 예의를 지킨다든가, 혹은 감독관의 지시대로 행동한다든가 이는 곧 어떤 제도적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위적 행위이기 때문에 순수한 그림이 그려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해의반박”이 말은 중국 화가들의 화가적 정신을 기르고자하는 것으로서 격언이 되었다. 진정한 화가는 마땅히 무위적 정신으로서 마음을 다스리고 가슴 속에는 대 우주의 창조와 같은 뜻으로 시대적 조류나 그 유행에 구속 받지 않으며 어떠한 이론도 모두 타파하였을 때 비로소 불휴의 명작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가는 모름지기 대자연의 창조와 같은 무위적인 창작정신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때 명작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5. 한비자(韓非子)의 문학예술 배척
『한비자(韓非子)』에 “어떤 사람이 주군(周君)을 위하여 예쁘게 그림이 그려진 젓가락을 만들었다. 3년 만에 완성하였다. 주군(周君)이 이것을 보니 옷 칠하여 만든 젓가락이나 그 모양이 같았다. 주군(周君)은 대노(大怒)하였다. 젓가락을 만든 사람은 열 길이나 되는 담장을 쌓고, 여덟 자나 되는 문틀을 달았다. 그리고 주군(周君)으로 하여 그 위에 올라가 젓가락을 보게 하였다. 주군(周君) 이 그 젓가락을 바라보니 용, 뱀, 마차, 금수, 등 만물의 형상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주군(周君)은 몹시 기뻐하며 이 젓가락을 만드는 공이 아주 어렵지 않는 바가 아니나 그 젓가락도 사용할 때는 보통 소박하게 옷 칠해 놓은 젓가락과 같다” 하였다.

또한 『한비자(韓非子)』에 “제왕(齊王)의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왕(齊王)은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가? 하고 화가에게 질문하였다. 화가는 개나 말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 하였다. 그럼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쉬운가? 하고 묻자 화가는 귀신을 그리기가 가장 쉽다. 왜냐 하면 개나 말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안다. 그러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려도 그것들의 다양한 모습의 표현은 고사하고 그 다양한 동적 정적 양상을 진솔하게 분리하기조차도 불가능함으로 어렵다. 사람들이 잘 알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은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자기 멋대로 그려도 되기 때문에 그리기 쉽다” 하였다.

위의 두 문장가운데 전자는 효용성의 가치면에서 볼 때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후자는 칸딘스키의 말대로 사과를 아무리 잘 그려놓아도 그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처럼 모두 위선적인 것들이고 유위적(有爲的)인 것들이라서 실제사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혹세무민(惑世誣民)이기에 이러한 문학예술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만든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굴러가지 못한 것으로 그 본질에 대하여 진실하지 못하다면 삶에 무슨 도움이 되며, 형이상학적 정신세계에서 볼 때 정말 아는 사람(識者)은 어찌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리를 왜곡시키는 일을 경영을 하겠는가? 화가는 마땅히 소리에 따라 부화(수성부화-隨聲附和)하여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에 대한 경구(警句)이다.

206. 세부묘사보다 전체묘사
『회남자(淮南子)』에 “일반적인 진실을 그리지 않고 모공까지 표현하려는 세부적인 묘사양식을 취하면 사물의 본질을 잃게 된다. 월(越)나라 미인 서시(西施)의 얼굴을 아주 잘 그려놓았어도 인체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생기(生氣)가 표현되지 않으면 비록 아름답다하더라도 관객을 즐겁게 하지 못하고, 전국(戰國)시대의 맹장 맹분(孟賁)의 그 큰 눈을 그려놓았어도 비록 눈이 크기는 하지만 두렵지 않다” 하였다. “생기는 인체의 군주(生氣者人形之君)”라는 말이 있다. 회남자(淮南子)는 비록 성인도 따를 수 없는 기교로 정밀묘사를 했다하더라도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207. 호화불성, 반류구자(虎畵不成, 反類狗者)
후한(後漢)시대 마원(馬援)의 『복파논화(伏波論畵)』에 “호랑이를 그리려고 했는데 잘 못 그리면 반대로 개가 된다” 하였다. 이는 화가들의 정관(靜觀)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정관의 “정(靜)”은 “정(精)” 으로서 그 사물에 대한, 그 사물의 모든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진액 같은 것을 간파하라는 의미이다. 즉 개와 호랑이의 특징을 간파한 후에 그리라는 것이다.

208. 상득익창(相得益彰)
위(魏)나라 서간(徐幹)의 『위장논화(偉長論畵)』에 “화가들이 오직 소뱍함만을 추구하고, 현황(玄黃)의 채색에 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황(玄黃)의 채색에만 주의하면 소박한 본질이 상실된다” 하였다.현황(玄黃)의 현(玄)은 하늘을 상징하는 색이며, 황(黃)은 땅을 상징하는 색이다. 달리 말하면 현(玄)은 양(陽)으로서 명암의 명(明), 황(黃)은 음(陰)으로서 암(暗)을 의미한다.
후한(後漢)시대 왕정수(王廷壽) 의 『문고부화(文考賦畵)』에 “하늘을 그리고 땅을 그리며 생명체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

이나 산과 바다의 신비로움을 그릴 때 먼저 그 형상을 그리고 채색을 하여 완성한다. 우주만물의 천변만화(千變萬化)나 그 현상을 형태로서 구성해 내고, 색으로서 형상성을 분리하여 그것들의 정서를 빠짐없이 표현하였다” 하였다. 이는 곧 자연사물이 현화(玄黃)의 이치 즉, 음양(陰陽)의 이치로서 그것들에게 알맞은 형상과 색을 띄고 생겼음을 말하며, 또한 그림도 이와 같이 그려야 함을 말한 것이다.
“상득익창(相得益彰)”은 현(玄)과 황(黃), 음(陰)과 양(陽), 명(明)과 음(陰)에 의하여 문채를 이루며 자연사물이 서로 밝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림도 이러한 자연현상을 표현할 때 현(玄)과 황(黃)등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더욱 그러한 모양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림은 자연현상의 이러한 이치에 따라 그려야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창(彰)은 “나타나다, 밝다, 드러내다, 문채로서 그것들이 생긴 이치를 드러내다”의 의미로서 “형상이나 현상이 눈에 잘 보이도록 명백히 드러내다”의 의미이다.

209. 자서자화(自書自畵)
진(晉)나라 왕 익(王異)의 『평남논화(平南論畵)』에 “왕희지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16세에 예술에 대한 공부는 물론 서예나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이 탁월하여 사람들은 서예나 화법(畵法)에 대한 강의를 청하였다. 그는 그림은 역시 나 스스로 그리는 것이고, 글씨도 또한 나 스스로 쓰는 것이다......서예나 그림은 진실로 그 법이 있다. 만약 그대가 서예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많이 공부하여 그 쌓임이 있을 때 최상의 경지(스스로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림공부를 하고 싶다면 비록 스승으로부터 공부하였더라도 스승이나 제자가 각기 자기의 개성 있는 법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였다. 왕희지의 이러한 말로부터 “노서노화(奴書奴畵)” 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의 서법이나 화법의 모방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독창성 없는 창작행위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안옥순 作 <코스모스> 90.9 x 72.7cm

코스못(cosmos)는 가을에 흰꽃과 붉은꽃이 피는 엉거시과의 일년생 풀, 코스모스는 그 자체속에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한다. 결국 코스모스는 이러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피는 가을 꽃인데 가을의 청명한 기운을 얻어 핀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상징하느 꽃이기도 하다.
그런데 4계절의 즉, 봄의 훈훈한 기, 여름의 더운 기, 가을의 서늘한 기, 겨울의 찬 기에 따라서 사물의 변화현상이 다르다.
봄의 생명의 탄생, 여름은 무성히 자라고, 가을은 결실을, 겨울은 저장(정적상태), 이러한 우주적 순환 이치는 언제나 본지(미술논단 213)에서 말한 천취(天趣)로서 다음 계절의 기 현상을 예고한다.
본 작품은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의 청명한 기(氣) 속에는 이미 차고 암울한 겨울의 기가 침전되여 있는 의취(意趣-天趣)를 표현 하려는 실험 작품이다. 즉 가을이 예고하는 겨울 문턱의 느낌을 표현한 것에 주력한 작품이다.

“스스로” 란 정통성의 법을 무시하고 개개인의 감정에 따라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자유라는 개념과 같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어떠한 행동을 하던지 윤리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그림을 마음대로 그려도 법에서 어긋나지 않는 그림이 되었을 때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법에 의하여 철저히 공부하여 법으로부터 구속감을 느끼지 않을 때 비로소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때 그 “스스로” 는 지구가 많은 변화과정을 겪어오지만 태양을 중심으로 수 만년을 변함없이 회전하는 “지구운행 자체” 같은 것이다. 그가 말한 “공부를 많이 하여 쌓임이 있을 때(적학-積學)”의 의미는 법이 몸에 배어 법을 의식하지 않으며 법의 구속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의 쌓인 학문(적학-積學)

이다. 겨우 며 칠, 몇 달, 몇 년 정도의 공부로서 진정 “스스로 그림 그리는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야말로 스스로 그림을 그려 개성 있는 창작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가?....

210. 기교위묘(技巧爲妙)
북제(北齊) 안지추(顔之推)의 『안씨가훈논화(顔氏家訓論畵)』에 “기교는 한 폭의 그림이 어떻게 하여 그처럼 오묘한가? 의 오묘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옛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린 아이에게 물어봐도 아는 유명한 화가들이 많다.......이러한 오묘함의 기교로서 극치에 도달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그럴만한 아름다운 화법(畵法)이 있다.

매미를 그리고, 새를 그리며, 부채그림, 말 그림, 점 하나로서 여러 가지 자태의 인물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저명한 화가들은 고금의 명화 속에 남겨진 오묘한 기교에 대하여 특히 보배로서 그것들을 애지중지하며 자신의 미숙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자세로 공부하여 재능이 넘치는 학문과 명쾌한 선비로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才學快士, 而畵絶倫). 많은 책을 두루두루 널리 읽으면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과 융화되지 않는 것이 없다(박람군서, 무불해흡-博覽群書, 無不該洽)”하였다.
특히 안지추(顔之推)가 강조한 것은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여 기교의 능숙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지나 않는가? 항상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교의 어려운 점을 익혀서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211. 심목상수(心目相授)
당(唐)나라 배효원(裵孝源)의 『정관공사화록서(貞觀公私畵錄書)』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형상을 띠고 나타난 것, 또는 형상 안에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조명해 보면 모양이 비슷비슷한 상(象)들이다. 하늘과 땅이 생기면서부터 지구상에 생기는 사물들의 모습을 그림을 그려서 하나하나 변증(辨證)하였기에 가히 사물의 형상을 통해서도 사리를 분별할 수 있다. 이것이 전대(前代)의 성현(聖賢)들의 업적이다.......이러한 업적을 남긴 기인(奇人)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마음과 눈이 하나가 되어 사물을 관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로부터 몸과 사물이 하나가 되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것으로 ‘심목상수(心目相授)’의 관조방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신여물화(身與物化)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은 보는 목적에 따라 다르다. 화가가 사물을 보는 시각은 그 사물 이면에 내재하는 어떤 진실 혹은 생성원리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인이 보는 사물의 시각은 그 가치에 주목한다.
그런데 화가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도 중요하지만 실제 창작활동을 전개할 때는 “신여물화(身與物化)”의 정신상태의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림의 기교는 정교하고 깊지만 그것에 침전되어 있어야 할 형이상학적 학문이 없다면 결코 좋은 그림이 아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재능을 가지고 마음은 오로지 사물자체의 형이상학적인 면과 형이하학적인 면을 함께 관조하는 우주적 정신을 가지면 스스로 그림 그리는 법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여섯 가지 법이 구비되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사물에 따라 그 진솔한 형상이 저절로 표현된다. 그러나 역대 모든 화가들 가운데 그러하지 못한 화가들은 비록 기교는 우수하나 표현된 내용이 빈약하여 좋은 그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12. 외사조화, 중득심원(外師造化, 中得心源)
당(唐)나라 장 조(張璪)의 『문통논화(文通論畵)』에 “외사조화, 중득심원(外師造化, 中得心源)”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회화 사상 유명한 말 가운데 하나이다. 즉, “말은 간단하나 말하고자 한 뜻은 남김없이 구비되어 있고, 하고자 한 말의 뜻은 그림 가운데 모두 다 있다(언간이해, 도진화중-言簡意該, 道盡畵中)”는 말과 함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반드시 숙지해야 할 화론(畵論)이다.
“외사(外師)” 의 “사(師)”는 주(周)나라 시대 2천 5백 명을 1 개 사단으로 하는 군사제도로서 무리, 대중, 『주역(周易)』사괘(師卦)의 땅 가운데 물이 있다(地中有水)는 의미로 즉, 물이 흘러서 낮은 곳으로 모이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인데 물이 지형에 따라 흐르듯 길이 비록 험하나 그것에 순행(順行)하는 군대의 의미, 『주례(周禮)』에는 열 개의 도시를 1 개 사(십도위사-十都爲師)로 하는 행정구역, 사람을 가르쳐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서경(書經)』에는 우두머리, 그러나 윗사람은 마땅히 현명함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음, 법을 본벋다(효법-效法), 『맹자(孟子)』에는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최고 경지에 도달한 사람, 『좌씨(左氏)』에는 법(法), 또는 법을 본받다, 『장자(莊子)』에는 순종(順從), 이 외에 수도(서울), 어른, 등의 의미가 있다. “외사(外師)”는 결국 “밖으로는 주역(周易) 사괘(師卦)의 의미와 같은 것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조화(造化)”는 “조화(調和)”의 의미와 다르다. 전자는 자연의 조화현상과 같은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자연의 조화현상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서 인문 문화를 창조할 때 자연현상처럼 조화를 이루도록 인위적으로 어떤 법에 의한 재구성으로 이루어진 조화(調和)를 뜻한다.

“조화(造化)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사물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에 의하여 생성변화(生成變化)한다. 음과 양이 없으면 어떠한 사물도 생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음과 양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조화를 이루느냐(老子는 이것을 道라 하였음)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기(氣)에는 맑은 기(청기-淸氣)가 있고, 흐린 기(탁기-濁氣)가 있다 한다. 청기는 양의 기이며, 탁기는 음의 기이다. 청기와 탁기가 어떤 비례로 혼합되었느냐에 따라서 탄생되는 생명체가 다르고, 같은 종류라도 그 지능이 다르다 한다. 나무 가운데서도 가장 맑은 기를 얻어 생긴 것이 소나무이고, 동물 가운데 가장 맑은 기를 얻어 태어난 것이 사람이며, 탁기에 의하여 생긴 것이 동물이라 한다. 사람으로서 지능이 조금 낮은 사람도 이 청기와 탁기의 융화(融和)상태에 의한 것이라 한다. 흰 개와 검정개가 교미를 하여 생긴 강아지는 바둑이다. 이러한 현상은 『논어(論語)』에서 말한 본질적인 상태에 따라 나타난 현상은 그 본질에 상반하다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현상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이 원인에 따라 원인에 상반된 것이 생긴다. 검정개와 흰 개와의 교미에서는 바둑이 외에 검정개 혹은 흰 개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문질빈빈(文質彬彬)적인 행동, 앞에서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 등은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띠고 있다.

“조화(調和)”는 이와 다르다. 인간의 감정을 본위로 하여 인위적으로 조화를 시키기 때문에 본질에 상반된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사실과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융화현상의 부적절함에 의하여 제2의 어떤 것이 생기기는커녕 폭발하고 만다.

따라서 화가는 표현하려는 사물(표현대상)을 볼 때 그 사물의 자연

적인 조화 현상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한 폭의 그림을 창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득심원(中得心源)”의 “중득(中得)”은 『사기(史記)』에 “강후의 간음 행위가 있으니 왕과 서로 중궁이 맞지 않는다(康后有淫行, 與王不相中得)”, 『논형(論衡)』에 “어찌하여 그와 더불어 하는 행사들이 서로 중궁이 맞지 않는가(何其不與行事相中得)”라는 말이 있다. “중(中)”은 『설문(說文)』에 안(내-內), 『예기(禮記)』에 정신, 심지(心志), 『시경(詩經)』에 중심(中心), 『소문음양유편(素問陰陽類編)』에 장부(臟腑), 오장육부가운데의 하나, 『한서(漢書)』에 천자(天子)의 서(書) 즉, 바른 이치만을 기록한 법칙적인 글이라는 의미, 『논어(論語)』에 정도(正道) 즉, 중정지도(中正之道), 『국어(國語)』에 평균(平均), 『주역(周易)』에 중화(中和), 『장자(莊子)』에 순종, 『좌씨(左氏)』에 합당(合當)이라 하였다. “중득(中得)”은 얻은 바가 중심에 합당, 정도 그 자체, 중화상태, 인간의 본성적인 정신으로서 본래 마음의 근원인 심원(心源)에 합당해야 하고 심원에 적중한 정도 자체여야 하며 심원에 순종하여 중화를 얻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말이 시사(示唆)하는 것은 화가는 표현대상으로부터 형이상학적 조화현상을 본받고, 본받은 바가 칸트가 말한 인간의 순수이성(純粹理性)에 중화될 수 있는 정도(正道)여야 한다는 것이다.

213. 유거기교, 의명현화(遺去機巧, 意冥玄化)
이것은 화가들의 작품이나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경계(境界)이다. 즉, 마음으로 얻은 바의 조화현상을 본받아(외사조화-外師造化) 그것에 따라 손이 본받은 것과 틀림없이 응대하여(득심응대-得心應手) 자연사물이 생성 변화하는 신묘한 이치와 한 무리가 되는(여신위도-與神爲徒) 경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에 도달하려면 마음속에는 호연지기가 있어야 하고(흉유호연지기-胸有浩然之氣), 손은 마치 만두장사가 1초 만에 만두 한 개씩을 만들어 내듯이 숙련된 기교가 없으면 안 된다(수구숙련기교불가-手具熟練技巧不可)는 것이다.

“유거(遺去)”는 버리고 제거한다, “기교(機巧)”는 순수하지 못한 계기(契機), 정도(正道)에 어긋난 계기, 본받은바 자연의 조화현상에 어긋난 계기를 마련하려는 손재주나 아이디어에 불과한 기교(技巧)라는 의미이다.

“의명(意冥)”의 “의(意)”는 형이하학적 의미로서는 개인의 생각, 개인의 뜻, 개인의 취향 등의 의미가 있고, 형이상학적 의미로서는 천취(天趣)로서 자연현상의 변화추이(變化推移)를 뜻한다. 즉,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의의(意義), 의리(義理), 『두보시(杜甫詩)』에 이취(理趣), 풍정(風情), 『논어(論語)』에 무의(毋意), 『후한서(後漢書)』에 군왕은 하늘의 이치를 본받을 뿐 사사로운 생각을 가지고 백성을 통치하지 않다 로서 하늘의 이치, 『예기(禮記)』에 마음으로 사사로운 생각을 하는바 없다, 미루어 안다 등의 의미를 뜻한다.

“의(意)”는 결국 “의취(意趣)“로서 『남사(南史)』에 의향지취(意向旨趣)라는 의미처럼 어떤 현상에서 어긋남이 없도록 그 뜻에 따라서 흐르는 향방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먼 산 너머 많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 곳에 큰불의 화재가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고, 남쪽 하늘에 먹구름이 피어오르면 한바탕 소나기가 내릴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의명(意冥)”의 “명(冥)”은 암(暗), 무광(無光), 밤, 어둠, 먼 곳, 숨은 것, 묵계(墨契)로서 실제로 드러나지 않고 암시적인 기세(氣勢)만 느끼게 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의명(意冥)”은 『상서(尙書)의 도미(道微)와 같은 말로서 드러나지 않으나 어떤 현상으로서 기세(氣勢)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예고와 같은 뜻이다.

“현화(玄化)”는 자연현상의 조화를 의미한다. 현(玄)은 하늘, 화(化)는 자연의 조화(造化)이다. 그러므로 “의명현화(意冥玄化)”는 화가가 표현하려는 이미지를 뜻하는 말로서 즉, 자연의취의 기세와 같은 의향취지를 표현내용으로 하라는 것이다.

당(唐)나라 부재(符載)의 『관장원외화손석서(觀張員外畵松石序)』에 “장조(張璪)의 그림 그리는 솜씨는 그 오묘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로서 그의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진도(眞道-자연의 이치, 하늘의 뜻,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 노자가 말한 眞常道)이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이미 사사로운 계기를 마련하려는 기교를 아낌없이 버리고 그가 표현하려는 것은 천취로서 만물의 성정(性情)이다. 그의 정신세계는 자연의 이러한 이치가 침전되어 눈으로 사물의 외형만 보는 그러한 평상(平常)시각이 아니다. 그러므로 얻은바 천취는 그의 붓 끝에 전달되고, 붓끝에서 표현되는 조화(造化)의 기운은 넘쳐 신(神)과 함께 한다” 하였다. 위의 말은 곧 이러한 장조(張璪)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위의 문장을 간단히 말하면 현대주의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재료로서 재치와 기교만 일삼는 창작행위를 지양(止揚)하고 자연현상과 같은 천취(天趣)의 의향지취를 표현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214. 화가는 성인
당(唐)나라 주경현(朱景玄)의 『당조명화록서(唐朝名畵錄序)』에 화가는 성인이다(畵者聖也)라는 말이 있다. 왜냐 하면 “천지를 다 더듬어보아도 이르지 못하는 곳, 해와 달이 비쳐도 다 비치지 못하는 곳이라도 섬세한 붓털을 휘두른즉 무수한 사물의 종류들은 그의 마음으로부터, 따라서 손바닥만한 지면(紙面)이라도 그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고, 아득한 광야도 그의 손바닥 안에 있다. 심지어 신묘한 이치를 마음대로 창출하여 사물의 본질을 재창조하며, 가벼운 붓질 속에 천취(天趣)의 소박함이 표현되니 자연형상에 따라 그림이 저절로 되고, 자연현상에 없는 것도 이러한 이치에 의하여 형상을 창조한다. 그림의 아름다움은 월나라 미녀 서시(西施)라도 감당할 수 없고, 그의 바름은 모모(女莫母 - 중국 상고시대 황제의 네 번째 妃)라도 추하게 바꾸어 놓을 수가 없다. 이러한 오묘함은 신(神)의 경지에 진입하였고, 그의 심령은 이미 성인과 통한다. 그래서 화가는 성인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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